한옥
[스크랩] 한옥의 탄생
행복한건축가s
2009. 1. 13. 15:43
. 백두대간과 한옥 : 자연조건
그리고 남쪽으로 내려선 백두대간은 태백산을 허리로 세워 올려 나아가다가 남해에 이르러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산맥은 반도의 70%를 차지하면서 삼천리를 흘러내려오는 동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산과 강을 낳았고 마을을 만들었다.
이름 없는 수많은 산들은 그저 땅만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저마다 가슴 속에 품었던 물을 골짜기를 통해 땅에 흘려보냈다. 그 물줄기는 동해로 흘러 평야지대를 적셔주는 크고 작은 강이 되었다.
한반도의 산 중에서 머리에 물을 이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는 산이 바로 백두산과 한라산이다. 반도의 시작과 끝에 서 있는 두 산은 하늘 못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하다.
이들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땅 위에 솟아 있는 백두산은 육로가 되어 만주와 요동벌을 한 몸으로 만들었지만, 바다 위에 솟아 있는 한라산은 해로를 이용해야만 외지로 연결되는 작은 섬을 이루었다. 두 산이 세상과 접속하는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이 두 산을 사이에 놓고 수많은 산들이 제 나름의 독특한 모습으로 우람하게 솟아 서로 어깨를 짚고 장엄한 줄기를 이루어냈다.
백두산과 청북정백 . 청남산맥의 분기점인 낭림산과 묘향산, 한북정맥의 분기점인 분수령의 사이마다 관서지방과 관북지방형 가옥이 들어섰다.
겨울이 길고 한랭한 관북지방에서는 田자형의 방 배치와 정주간(鼎廚間 부엌과 안방 사이에 벽이 없이 부뚜막과 방바닥이 한데 잇닿은 곳)을 찾아볼 수 있다.
田자형의 평면 형태는 함경도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으나, 평안도 지방에서는 가끔 찾아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이다.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의 경우는 一자형으로 건물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북서풍의 영향이 강한 관서지방에서는 ㄱ자형의 가옥구조가 많이 나타나며, 넓은 대청마루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 지역 가옥구조는 남부지방의 一자형 3칸 집과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서부 해안지방의 칸잡이(집 규모를 설정할 때 기둥과 기둥사이가 몇칸인가를 결정하는 것)는 네칸 또는 다섯칸잡이 집이 많이 지어졌다. 네칸 집의 평면은 집 중앙에 주로 마루방을 두고 양쪽에 건넌방과 큰방을 두는 형식인데 이때 부엌은 왼편 머릿칸에 두고 머릿퇴를 달아 모방이나 정지방을 만들어 사용한 집도 있다.
그리고 툇마루로 된 다섯칸잡이 집에서는 주로 부엌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큰방과 건넌방을 두었으며, 초가의 경우 지붕 줄매기는 서해안 지방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마름모매기의 기법과 일자매기를 주로 했다. 기후가 따뜻한 남부지방에서는 일자형의 홑집구조가 주로 나타나며,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기 위한 대청마루가 안방과 건너방 사이에 존재한다.
일반 주택에서 방은 열린 공간인 대청과 반대되는 폐쇄적인 의미를 지닌 개인적인 공간이다. 잠을 자고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인 전통가옥의 방은, 잠을 잘 때는 침대 대신 따뜻한 구들 방바닥 위에 이부자리를 펴고 자고 낮에는 의자대신 방석에 앉아 지내는 좌식생활을 하도록 되어있는 다목적 사용공간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바닥에 바로 앉아서 생활하기 때문에 방을 늘 청결하게 유지하였다. 방의 내부는 모두 벽지나 천장지를 발랐으며 바닥은 장판지로 마감하였다.
이러한 자연과 사회적 조건 때문에 한옥은 나름의 특수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집을 지을 때 산자락에 의지해 지으면서 결코 산을 깍지 않고 주춧돌도 원래 자연에 있었던 것을 그대로 사용함으로서 건축재로도 목재와 흙을 중심으로 자연과 함께하는 재료들을 사용했다.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은 온돌과 마루가 공존한다는 것이며 처마를 깊숙이 뺀다. 한옥의 평면에 온돌과 마루가 공존하게 된 것은 추운지방의 평면과 따뜻한 지방의 평면이 결합하면서 생겨난 한옥만이 갖고 있는 특징으로 사계절의 냉난방을 위한 것이다. 집은 쾌적해야 함과 동시에 명랑하고 밝아야 한다는 것으로 남향을 상당히 중요시 여겼으며 지붕의 처마는 적당한 하절기 직사광선을 피해야 하기에 깊숙이 내리게 되는데 자칫하면 무거워 보일 수 있으므로 추녀를 잡아 올려 솟아 오르게 만들었다.
동북아시아의 중심 백두산, 이 산에서 위로 가면 동쪽으로 만주벌이 나오고 서쪽으로는 요동벌이 나오며, 남뽁으로 뻗어내린 산맥은 한반도를 만들었다.
압록강과 두만강 사이에 솟아오른 백두산, 동쪽으로 험한 준령들이 줄기차게 이어져 있고, 서쪽으로 압록강을 따라 가지치기를 시작하면서 인체로 치자면 목을 만들었다.
그리고 남쪽으로 내려선 백두대간은 태백산을 허리로 세워 올려 나아가다가 남해에 이르러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산맥은 반도의 70%를 차지하면서 삼천리를 흘러내려오는 동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산과 강을 낳았고 마을을 만들었다.
이름 없는 수많은 산들은 그저 땅만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저마다 가슴 속에 품었던 물을 골짜기를 통해 땅에 흘려보냈다. 그 물줄기는 동해로 흘러 평야지대를 적셔주는 크고 작은 강이 되었다.
한반도의 산 중에서 머리에 물을 이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는 산이 바로 백두산과 한라산이다. 반도의 시작과 끝에 서 있는 두 산은 하늘 못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하다.
이들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땅 위에 솟아 있는 백두산은 육로가 되어 만주와 요동벌을 한 몸으로 만들었지만, 바다 위에 솟아 있는 한라산은 해로를 이용해야만 외지로 연결되는 작은 섬을 이루었다. 두 산이 세상과 접속하는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이 두 산을 사이에 놓고 수많은 산들이 제 나름의 독특한 모습으로 우람하게 솟아 서로 어깨를 짚고 장엄한 줄기를 이루어냈다.
산이 뼈라면 강은 혈관이고 터는 경락이다. 이것을 믿고 오천년을 살아왔던 사람들이 바로 한민족이다. 산이 클수록 하늘에 가까워지려는 인간사가 신비화되고 산이 낮을수록 도시 속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드러낸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산에 이상한 기운이 흐른다고 믿고 있었다.
하늘이 처음 열리고 이 땅이 솟아오르면서 호랑이와 용의 정기가 산줄기를 따라 깊이 묻혔다는 것이다. 그 기운이 왼쪽으로 가면 청룡이 되고 오른쪽으로 가면 백호가 되어,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지기(地氣)의 의미를 갖는다. 그 정기가 모여든 산맥 사이마다 강물이 흘렀고 주변에 집들을 짓고 살았다.
하늘이 처음 열리고 이 땅이 솟아오르면서 호랑이와 용의 정기가 산줄기를 따라 깊이 묻혔다는 것이다. 그 기운이 왼쪽으로 가면 청룡이 되고 오른쪽으로 가면 백호가 되어,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지기(地氣)의 의미를 갖는다. 그 정기가 모여든 산맥 사이마다 강물이 흘렀고 주변에 집들을 짓고 살았다.
백두산과 청북정백 . 청남산맥의 분기점인 낭림산과 묘향산, 한북정맥의 분기점인 분수령의 사이마다 관서지방과 관북지방형 가옥이 들어섰다.
겨울이 길고 한랭한 관북지방에서는 田자형의 방 배치와 정주간(鼎廚間 부엌과 안방 사이에 벽이 없이 부뚜막과 방바닥이 한데 잇닿은 곳)을 찾아볼 수 있다.
북부지방의 가옥 형태는 일반적으로 방의 배치가 田자형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방들은 방과 방이 직접 통하도록 복도나 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방과 부엌 사이에 있는 정주간은 벽이 없어 주방 작업이나 가족들의 식사 또는 휴식의 장소로 사용되어 지금의 거실과 같은 공간이었다.
특히 방과 부엌 사이에 있는 정주간은 벽이 없어 주방 작업이나 가족들의 식사 또는 휴식의 장소로 사용되어 지금의 거실과 같은 공간이었다.
田자형의 평면 형태는 함경도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으나, 평안도 지방에서는 가끔 찾아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이다.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의 경우는 一자형으로 건물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북서풍의 영향이 강한 관서지방에서는 ㄱ자형의 가옥구조가 많이 나타나며, 넓은 대청마루를 찾아보기 힘들다.
백두대간이 태백산에서 줄기를 내린 두문동재 정상에 서면 절대 놓칠 수 없는 볼거리 중의 하나가 바로 매봉산이다. 매봉산의 봉우리(1,145m)에서는 백두대간과 갈라서는 낙동정맥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데 한 맥이 서진하여 속리산에서 한남금북정맥을 만들고, 이 둘은 한강을 끼고 있는 중부지방을 형성하고 있다. 중부 지방가옥은 주로 ㄱ자형과 ㄴ자형, ㅁ자형의 구조가 많다. 일부 지역에 있어서는 一자형도 분포하고 있으며, 강원 산간 지방에서는 田자형 주거도 가끔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주거의 평면 형태가 나타나는 것은 기후적으로 북부와 남부의 중간 지역에 해당함으로써 양 지역의 평면형태가 절충되었기 때문이다. 중부형 가옥은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 충청도 일부 지역이 속한다.
" 백두대간은 덕유산을 거쳐 장안치(長安峙)에 이르러 금남호남정맥을 만들고 다시 금남호남정맥의 마이산에서 뻗어나가는 호남정맥을 만든다. 덕유산 마루의 백두대간 가운데 으뜸은 남덕유산(해발 1507)이다. 남덕유산 남쪽으로는 육십령을 향하여 백두대간이 흘러가고, 동쪽으로는 금원산(해발 1353)을 지나 진주 땅까지 흘러간다. 육십령이 백두대간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고개라면 남령과 무령고개는 각각 경상도와 전라도 땅으로 뻗어나가 백두대간과 나란히 남북으로 걸려있다. 호남의 줄기인 이들 산맥이 전라남북도 지방과 충청도 일부지방을 지칭하는 서부지방을 형성하고 있다. "
" 백두대간은 덕유산을 거쳐 장안치(長安峙)에 이르러 금남호남정맥을 만들고 다시 금남호남정맥의 마이산에서 뻗어나가는 호남정맥을 만든다. 덕유산 마루의 백두대간 가운데 으뜸은 남덕유산(해발 1507)이다. 남덕유산 남쪽으로는 육십령을 향하여 백두대간이 흘러가고, 동쪽으로는 금원산(해발 1353)을 지나 진주 땅까지 흘러간다. 육십령이 백두대간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고개라면 남령과 무령고개는 각각 경상도와 전라도 땅으로 뻗어나가 백두대간과 나란히 남북으로 걸려있다. 호남의 줄기인 이들 산맥이 전라남북도 지방과 충청도 일부지방을 지칭하는 서부지방을 형성하고 있다. "
이 지역 가옥구조는 남부지방의 一자형 3칸 집과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서부 해안지방의 칸잡이(집 규모를 설정할 때 기둥과 기둥사이가 몇칸인가를 결정하는 것)는 네칸 또는 다섯칸잡이 집이 많이 지어졌다. 네칸 집의 평면은 집 중앙에 주로 마루방을 두고 양쪽에 건넌방과 큰방을 두는 형식인데 이때 부엌은 왼편 머릿칸에 두고 머릿퇴를 달아 모방이나 정지방을 만들어 사용한 집도 있다.
그리고 툇마루로 된 다섯칸잡이 집에서는 주로 부엌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큰방과 건넌방을 두었으며, 초가의 경우 지붕 줄매기는 서해안 지방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마름모매기의 기법과 일자매기를 주로 했다. 기후가 따뜻한 남부지방에서는 일자형의 홑집구조가 주로 나타나며,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기 위한 대청마루가 안방과 건너방 사이에 존재한다.
남부지방 중에서도 섬 지역인 제주도와 울릉도의 가옥구조는 그 지역의 자연환경과 관련하여 독특한 구조가 나타난다. 제주도는 기온이 연중 온화하므로 난방의 필요성이 적다. 따라서 집 중앙에 있는 마루를 중심으로 방과 부엌이 분리되어 있으며, 곡식 등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하는 고팡이라는 특이한 공간이 있다. 그리고 특히 눈이 많이 내리는 울릉도에서는 강설에 대비하기 위해 우데기라는 독특한 가옥구조를 갖추고 있다.
바람이 심한 해안지방이나 북서풍의 영향을 많이 받는 평야지역에서는 강풍에 의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독특한 가옥구조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호남지방에서는 바람을 막기 위해 대나무로 집 둘레를 두르는 등 방풍림을 조성하거나, 제주도에서는 돌담의 높이를 높게 하여 강풍의 피해를 막으며, 또 지붕도 강풍에 잘 견디도록 새끼나 그물로 얽어맨다.
2. 한옥에 반영된 사회질서와 생활상
전통적으로 한민족은 질서를 숭상해왔다.
그래서인지 오랜동안 유겨적인 가치관을 지켜오며 살아왔다.
이러한 질서에 대한 생활공간이 두드러지게 표현된 것이 바로 조선시대이며 이 시기 문화는 신분제도인 양반, 중인(中人), 이교(吏較 하급관리층),양인(良人),천안(賤人)의 다섯계급으로 구분되어 나타난다.
양반은 동반과 서반의 문무관을 총칭하는 것이나 실제로는 문, 무 각 9품의 품관 및 이러한 관직에 임용될 자격이 있는 신분을 통칭하는 것이다. 양인과 양반의 중간계급인 중인은 높은 관직의 벼슬은 할 수 없었고 내의원(內醫院), 사역원(司譯院) 등의 직업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이교는 관료와 평민의 중간계급으로서 역시 일정한 직업에 종사하였고, 양인은 일반백성을 칭하는 것이었으며, 천인은 최하층에 속하는 백성으로서 천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모든 권리의 제한을 받는 신분이었다.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고루 갖추었던 조선시대 상류층의 솟을대문이 있는 주택을 상류 주택이라 한다. 이들 상류 주택은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사람들이 지었으므로 규모가 컸고 주택의 장식에도 섬세하게 신경을 많이 썼기 때문에, 주택의 기능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예술적인 가치도 높은 집들이다.
신분이 낮은 농민이라도 재력이 있었으면 규모가 큰 중류 주택에서 살았으며 사대부, 양반과 같은 상류 층중에서도 경제력이 없거나 안빈낙도의 선비정신을 중히 여겼던 사람들은 서민 주택에서 살았다. 민가(民家)란 백성의 집이란 뜻이지만, 일반적으로 중. 하류층의 일반 서민들이 살았던 집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초가지붕은 민가를 상징할 정도로 가장 흔히 쓰인 서민주택의 지붕형태이다. 민가의 형태는 지형적, 기후적 여건, 지방의 경제상태 등에 따라 규모나 건물 배치 방식이 달랐으며 특히 기후의 영향으로 지방마다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닌다. 서민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했으므로 주택을 지을 때도 장식적인 면보다는 기능적인 면을 더 중시하여 대부분 방과 대청, 부엌으로 구성된 단순한 구조를 지녔다.
신분이 낮은 농민이라도 재력이 있었으면 규모가 큰 중류 주택에서 살았으며 사대부, 양반과 같은 상류 층중에서도 경제력이 없거나 안빈낙도의 선비정신을 중히 여겼던 사람들은 서민 주택에서 살았다. 민가(民家)란 백성의 집이란 뜻이지만, 일반적으로 중. 하류층의 일반 서민들이 살았던 집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초가지붕은 민가를 상징할 정도로 가장 흔히 쓰인 서민주택의 지붕형태이다. 민가의 형태는 지형적, 기후적 여건, 지방의 경제상태 등에 따라 규모나 건물 배치 방식이 달랐으며 특히 기후의 영향으로 지방마다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닌다. 서민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했으므로 주택을 지을 때도 장식적인 면보다는 기능적인 면을 더 중시하여 대부분 방과 대청, 부엌으로 구성된 단순한 구조를 지녔다.
일반 주택에서 방은 열린 공간인 대청과 반대되는 폐쇄적인 의미를 지닌 개인적인 공간이다. 잠을 자고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인 전통가옥의 방은, 잠을 잘 때는 침대 대신 따뜻한 구들 방바닥 위에 이부자리를 펴고 자고 낮에는 의자대신 방석에 앉아 지내는 좌식생활을 하도록 되어있는 다목적 사용공간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바닥에 바로 앉아서 생활하기 때문에 방을 늘 청결하게 유지하였다. 방의 내부는 모두 벽지나 천장지를 발랐으며 바닥은 장판지로 마감하였다.
이러한 자연과 사회적 조건 때문에 한옥은 나름의 특수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집을 지을 때 산자락에 의지해 지으면서 결코 산을 깍지 않고 주춧돌도 원래 자연에 있었던 것을 그대로 사용함으로서 건축재로도 목재와 흙을 중심으로 자연과 함께하는 재료들을 사용했다.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은 온돌과 마루가 공존한다는 것이며 처마를 깊숙이 뺀다. 한옥의 평면에 온돌과 마루가 공존하게 된 것은 추운지방의 평면과 따뜻한 지방의 평면이 결합하면서 생겨난 한옥만이 갖고 있는 특징으로 사계절의 냉난방을 위한 것이다. 집은 쾌적해야 함과 동시에 명랑하고 밝아야 한다는 것으로 남향을 상당히 중요시 여겼으며 지붕의 처마는 적당한 하절기 직사광선을 피해야 하기에 깊숙이 내리게 되는데 자칫하면 무거워 보일 수 있으므로 추녀를 잡아 올려 솟아 오르게 만들었다.
한옥의 건물배치는 좌우대칭이 아닌 비대칭적인 배치를 하는데 각 채들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시원하게 배치된다. 대지가 경사지일 때는 깍지 않고 경사를 그대로 활용하거나 흙으로 수평을 잡은 다음 중요건물을 높은데 두고 부속건물은 낮은데 두어 방마다의 서열이 존재하며 심지어 방바닥도 윗목과 아랫목이 있다.
출처 : 학천농장
글쓴이 : 학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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